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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무한한 낭비와 소비를 조장하는 시대는 끝났다

by 마음고요 2020. 5. 19.

참았던 소비욕망을 분출하는 시대는 끝났다  

 

 ;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

 

 

 

지난 40년 동안 우리 지구적 자본주의 문명을 떠받치던 구조들이 다 무너지고 있다.

그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가 코로나19 사태다

지난 시대를 네 가지 정도를 얘기해 볼 수 있는데  지구화하고 도시화하고 금융화하고 생태적 위기 4개 정도를 들 수가 있다.  네 가지 단어가 지금 지난 40년 동안 사실 인류역사에 한 번도 없었던 일들이다. 

 

첫 번째로 지구화라고 하는 건 생산의 산업과정 이게 이른바 가치사슬이라고 하는데 산업과정이 전 지구적으로 연결이 된 건 지난 40년 동안 처음이다. 그래서 지금 미국 사람들이 휴기가 없어서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봉변을 당하고 있는데. 화장지 회사에다가 언제 다음 생산이 나오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한다왜냐하면 중국에서 재료가 와야 되는데 그걸 알 수가 없다.

 

 

이 지구화라고 하는 게 40년 동안 벌어졌고 그 다음에 도시화가 있다.

단순히 도시가 커졌다라는 게 아니라 지구적으로 거대도시들이 몇 개 큰 게 나타난 다음에 이 거대도시들끼리 아주 긴밀한 네트워크를 맺어서, 홍콩은 뉴욕하고 더 가깝지 중국 농촌하고 더 가깝지 않다.

 

훨씬 시간도 덜 든다. 그 다음에 도시들이 거대해지고 네트워크가 강해져서 지금 세계인구의 절반이 도시에 산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인데 더 중요한 일은 뭐냐 하면 도시에 살지 않는 사람들도 도시와 관계를 맺어야만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지금도 지방에 계신 분들도 큰 병에 걸리면 큰 도시에 와서 병원을 간다

 

그 다음에 이제 세 번째가 금융화다. 산업활동과 사회를 조직하는 기본원리가 만사만물을 다 금융자산으로 바꿔서 그 금융자산의 가격을 계산해서 조정을 한다. 그 가격을 산정하는 기능을 금융시장, 자본시장에 맡겨놓는 게 현대자본주의의 조직 원리다. 그냥 좀 더 쉽게 경제의 중심에 금융이 있다.

 

어떤 회사가 주가가 올라가면 그 회사는 사람을 더 고용할 수가 있고 주가가 떨어지면 사람 잘라야 되는거다도시화하고 금융화가 지구화랑 맞물려 있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진 이유가

3개랑 관계가 있다. 글로벌라이제이션 이런 현상 없었으면 이렇게 급속도로 대륙과 대륙을 넘어가서 확진자가 생기지 않는다.

 

우한에서 가령 일요일에 환자가 생겼는데 4월 되면 이태리가 쑥밭이 된다

옛날 같았으면 우한 근처에서 돌다 끝났을 것이다도시와 거대도시가 생겨나면 단위면적의 인구밀도가 굉장히 높아지고 그 단위면적의 수익성이 무지무지하게 높아진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나타나는데 이게 뭘 의미하냐 하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모든 사회적 자원을 돈의 논리로 자산가격화하는 게 금융화이다. 국가 정책, 교육, 의료와 같은 공공 부문도 돈의 논리, 금융 논리에 따라 재조직하는 것이다그러다보면 의료체계와 복지체계가 취약해지고 약자들의 희생이 커지는 게 지금 상황이다.

 

 

그리고 금융화는 이 산업의 조직을 금융시장에 맡긴다는 건 어떤 믿음을 깔고 있냐면 금융시장에 있는 금융투자가들이나 투자기관들이 모든 데이터와 모든 수리모델을 활용을 해서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할 능력이 있다라는 걸 전제로 한다.

 

그러려면 이 금융기관들이 가령 미래에 어떤 일이 있다면 이게 어떤 종류의 사건이 있는지에 대해서 과거에 있는 역사적 데이터를 가져와야 되고 이걸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을 작성을 해야 되는데 지금 벌어진 이 사태는 데이터를 비슷한 역사적 데이터를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서 생긴 사태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충격을 가져오고 사회적, 정치적으로 어떤 문제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서  예측을 할 수 있는 그 기능을 발휘를 못 한다. 이 경우에는 어떻게 되냐면 금융의 배분이라든가 경제활동의 조직 같은 걸 국가재정이나 국가관료기구의 개입이 상당히 떠맡을 수밖에 없다.

 

지난 40년 동안 경제를 작동시켰던 금융화는 다른 말로 하면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라고도 말한다. 이게 지금 기능이 거의 정지가 돼버린 사태이다.

 

그 다음에 이제 네 번째가 생태위기다.

자연 속으로 자꾸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들어가다 보니 그 결과가 기후 온난화, 기후 이변. 각종 지금 그 다음에 질병이 온다.  인간 서식지의 무제한적인 확장이 낳은 비극이다. 이 생태위기가 나타나는 양상이 보통 사람들이 재난영화 같은 걸 상상하고 갑자기 무슨 일이 터지고. 이렇게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도저히 인과율을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불현듯 덮친다. 이 비슷한 사태가 얼마 전에 있었던 호주의 산불 사태다.

 

지금 같은 한 40년 동안의 방식으로 무작정 자연을 활용하고 이용하고 착취할 수는 없구나라고 하는 어떤 규제와 제한이 훨씬 더 강해진다.

지구화, 도시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세계경제가 그나마 성장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았다. 그런데 이제 코로나19 닥치니까 이대로 계속 가서는 안된다.

지금 이 코로나 사태를 바라보는 지금 사람들이 느끼길, 뭐가 크게 바뀌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그전 30~40년 동안 살아왔던 방식을 이제 포기를 하자니 막막하다.

 

 

일상으로 되돌아가자고 한다.  여기에 좀 부드러운 버전이 있고 좀 센 버전이 있는데. 좀 부드러운 버전은 스웨덴 버전이다. 스웨덴은 정부가 아주 강력하게 록다운, 폐쇄를 하지 않았다.

자율에 맡기는 식으로. 여러 가지 추측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추측이 뭐냐 하면 스웨덴 경제가 만약에 그래서 해서 멈추게 되면 스웨덴은 성장이랑 복지랑 같이 가야 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경제가 조금이라도 멈추면 사회가 붕괴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정부가 이걸 굉장히 두려워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좀 센 버전은 한 달쯤 전에 미국의 텍사스주의 부지사가 나와서 늙은이도 좀 희생해라고 했다. 젊은애들이라도 먹고 살아야 될 게 아니냐. 이러다 경제 다 망한다. 그러니까 늙은이들이 병 걸려 죽을 각오하고 좀 나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비즈니스 애즈 유주얼 즉 하던 대로 되돌아가고 싶은 거다.

그런데 과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이나  회복되려면 1년에서 3년 사이 정도 걸릴 것이고 이 사태가 가라앉으려면 약이 나오든가 인류의 60%가 걸리든가 한다그런데 그 이전의 세계는 잊어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즉 비즈니스 애즈 유주얼로 못 간다. 도시화도 옛날 같은 도시화는 불가능하다.

옛날 같은 지구와 그 가치사슬은 지금 다 바뀌고 있고 그 다음에 금융이라든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도 바뀌기 때문에 지도에 없는 영역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는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의 미래는 단순미래는 불가능하다. 이유가 뭐냐 하면 예측이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구조가 멀쩡히 있는 상태에서 몇 가지가 바뀔 때는 우리가 예측을 할 수가 있다.

예측의 전제는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이라는 걸 놓고 모델을 만들어서 미래에 대해서 투사를 해 볼 수가 있는데 구조 자체가 바뀔 때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기에 예측이 불가능하다.

 

예측을 못 하기 때문에 금융시장에서 어떤 액터들이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할지 방향을 못 잡는다. 그러면 예측이 안 되는 상황에서는 미래를 우리가 대하는 방식은 결단이다.

그건 우리가 이 상황에서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고 어떤 식의 미래를 우리가 만들고 싶은가라고 하는 우리의 이성과 양심으로 되돌아가서 어떤 미래를 만들까라는 그림을 우리 스스로가 결단하고 만들어야 한다. 목표지점을 정해 놓고 거기를 향해 우리가 가자, 이렇게 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가 만들 사회는 그 가치를 잡고 만들어나가는 사회이다. 그래서 한 몇 가지 정도 원칙을 얘기할 수 있다. 미래 우리의 목표로 삼아야 할 원칙.

첫 번째는 우선 사회적, 개인적 차원이 아니고 사회적 방역을 해야 된다.

다시 말해서 더 이상 건강이나 보건이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 연대해서 서로 배려하고 아끼는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건설해야 되는 것이다.

우선 가장 취약하고 가장 먼저 고통을 받는 지역부터 구조역량을 갖다가 집중해야 된다

 

노동시장도 사회가 무너질 때는 바이러스 때문에 무너지기도 하지만 우울증이라든가 실업 때문에 무너지기도 한다. 그러면 장기실업을 당한 사람이라든가 우울증에 걸려 있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방역이다.

 

두 번째로는 경제활동의 조직을 갖다가 더 이상 시장경제에만 맡겨야 된다라는 도그마에서 좀 풀려나야 된다지금 미국이든 주요 선진국에서 실업률이 20% 정도를 육박할 가능성을 얘기하는데 이건 사회가 폭발할 지경이다. 당분간 노동시장에서 20%를 소화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고용보장제 같은 제도가 있다.

미국에서 지금 논의를 하고 있는데 국가가 이를테면 전체 경제 시스템의 한 3% 정도.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따지면 한 30조 정도, 30조에서 40조 정도 돈을 써서 모든 실업자들 중에 일자리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국가가 고용을 하는 겁니다.

국가가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고 사회적 기업이라든가 플랫폼 협동조합이라든가 여러 가지 경제 형태들과 협력을 해서, 지역에서든 아니면 좀 더 큰 차원에서든 사회적으로 소용이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30~40조면 실업자들을 다 고용할 수 있다.

 

이걸 고용보장제라고 한다. 최저임금에다가 기본 수당을 더하고 이렇게 하면 노동시장을 해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고용주들이 기본 최저임금에다가 조금만 돈을 더 주면 고용을 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굉장히 획기적인 아이디어이다.

이런 것을 할 만한 용기와 대담성을 가지고 있느냐, 지금 우리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말할 수가 있다. 이건 문명의 기본적인 문제입로 인간 역사에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무한히 긍정한 문명은 현대문명밖에 없다.

 

소비가 미덕인 건 현대밖에 없다. 1년에 한 번씩 꼭 해외여행을 가야된다라고 생각하는 문명도 이 문명밖에 없다.

이런 무한한 욕망을 추구하는 이 원칙이 계속되는 한 생태 위기는 없어지지 않고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 현대 문명의 가장 근간이 되는 이 원칙에 대해서 한 번 반성을 해 봐야 된다.

우리 욕망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질서를 부여할 수는 없는 것이냐, 무한한 욕망을 계속 무한하게 긍정해야 되느냐  이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좀 심한 표현으로 우리 현대경제, 자본주의 경제는 곧 쓰레기가 될 물건을 계속 생산해 오는 경제다. 바로 그게 무한욕망을 충족시키라고 또 부추기면서 과잉생산, 과잉소비, 과잉쓰레기 범란. 그동안 그래왔던 거 아닌가

 

지금 예를 들어서 에너지 위기, 기후 위기는 사람들이 이걸 대체 에너지로 해결하려고 그러는데 대체에너지를 아무리 훌륭한 걸 개발한다 하더라도 에너지를 줄여야 된다는 생각을 안 쓰는 한  더 쓸 것이다.  삶의 자세에 대한 그런 근본 성찰이 필요하다.

 

만에 하나 아까 말한 비즈니스 애즈 유주얼처럼 또 그냥 옛날식으로 살자라는 식으로 하게 되면 기업들은 다시 또 부추길 것이다. 무한욕망 추구를 

경제가 그렇게 쉽게 회복되지는 않을 것 같고 이 경제가 지금 어떤 하나의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상황을 잘 활용을 해 사람과 사회와 자연의 좋은 삶, 무한한 경제성장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과 사회의 좋은 삶. 이것을 원칙으로 경제를 전환하자는 담론과 운동을 강하게 일으켜야 된다.

 

새로운 형태의 기업들도 많이 나올 수 있다.  예를들어서 고용보장제는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냐면 이를테면 지금 자영업자 중에 식당하시는 사람 중에 손님이 줄어서 힘든 분들이 많다.

이분들이 도시락을 만들 수 있고 그 도시락을 배달해 줄 사람이 있다고 하면 장사를 더 잘할 수 있다. 마을에서 도시락을 만들고 자전거로 그걸 배달해 줄 사람들을 고용보장제를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새로운 구체적 케이스들은 머리를 같이 맞대고 만들어야 된다.

무한욕망 추구. 지구화, 도시화. 별로 문제의식 없이 해 오던 것을 멈추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