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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에 행복의 척도가 바뀐다

by 마음고요 2020. 5. 19.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코로나19 이후에 행복의 척도가 바뀐다

 

 

그동안에 우리는 원트, 사회가 원하는 것, 나도 왠지 해야 될 것 같은 것. 그런 거 쫓아다니느라고 정신 없었다. 그런데 라이크,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그걸로 이제는 행복의 척도가 바뀔 것이다. 기준이 바뀐다.

 

첫 번째 먼저 행복의 척도로서 첫 번째 기준이 바뀐다. 원트에서 라이크로 가야 된다.

만족감이 지혜로운 사회로 갈 것이다

남한테서 인정받는 투쟁. 인정받기 위해서 투쟁하는 삶이 그러니까 우리가 내가 40평짜리 집에 살면 50평짜리 집에 가고 싶은 이유가 50평짜리에 사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큰 차 가지고 싶은 이유가 또 못지않게 큰 차 타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그러니까 끊임없이 비교 우위에 서 있어야 하는데 이게 인간이 이러면 행복할 수 없다.

 

비교만큼 내 행복을 취약하게 만드는 방법이 없다. 내가 반에서 1등 하잖아요. 비교우위에 서 있는 것 같지만 내 반에 전교 1등 하는 애가 들어와 버리면 나는 2등으로 밀려버리니까, 3등으로 밀려버리니까.

인정 투쟁이라고 하는 게 남의 감탄을 받는 데 목매는 사람들이 어려운 삶인데 그러니까 그 감탄의 주체가 상대방이 아닌, 타인이 아닌 나로 바뀌어야 된다. 그러니까 내가 라이크하는 게 뭐냐. 내가 좋아하는 거, 진짜 내가 즐기는 그런 거다.

 

나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는 것. 그러니까 꽃을 정말 좋아하는 분들은 꽃의 색깔이 바뀌면 그 색깔이 바뀌는 것에 따라서 감탄이 일어나고 그리고 음식 좋아하는 사람은 약간의 맛의 변화에도 감탄이 일어나고 이런 식으로 나의 미학적 경험, 나의 감탄을 만들어내는 것들이 실제로 내 것이다.

남 눈치 볼 거 없다. 중요한 건 내 삶이다. 세계적인 언어심리학자인 마이클 토마셀로가 그랬죠. 모든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좀 더 복잡해지고 다음 세대보다는 좀 단순하다

이 얘기는 낫다, 못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감정의 체계가 좀 더 그쪽으로 복잡미묘하게 가고 있는 것뿐이다.

 

 

이 코로나 이후에는 그렇기 때문에 남의 인정이나 남의 감탄을 받을 기회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다. 언택트 사회가 되니까. 혼자 자기 혼자놀이가 익숙해져야 되니까.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진다라는 것은 남의 인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상에서 끊임없이 돌아다니면서 남의 인정과 남의 감탄에 목말라 있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해 봤더니 계속해서 사회적으로 계속해서 외로움을 못 이겨서 관계성을 도피하는 그런 삶을 살다가 보니까 남의 인정, 남의 감탄에 목매다가 갑자기 어라, 이게 내 감탄도 좀 중요해지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니까 이게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인정 투쟁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내가 일단 나에 충실한 경험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문화심리학에서는 그걸 예술적 경험 혹은 예술적 활동이라고 보통 표현하시지만 그냥 예술적이거나 아니면 미학적 경험만 나의 감탄을 자아내는 게 아니다. 내가 스스로 하는 감탄의 정말 결정판이 있다. 그걸 보람이라고 얘기한다. 보람 있다가 가장 스스로 감탄하는 거다.

 

 

임종, 사람이 돌아가실 때. 이제 나이가 많아서 돌아가실 때 연구해 보면 거기에 내가 돈 더 벌 걸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그 지위까지 올라가야 되는데 못 갔다 후회하지 않는다. 심지어 삼국지의 조조조차도 내가 삼국통일을 못해서 땅을 치고 원통하다라고 죽지 않았고 조조가 자기 무덤 70개 정도 더 만들라고 하고 죽는다.

 

 

왜냐하면 내가 사람들한테 너무 못되게 굴어서 보람을 못 찾았다. 그러니까 자기의 무덤을 누가 파헤칠까봐 그 두려움으로 인해서 무덤을 칠십 몇 개를 더 만들라고 하고 죽었다.

대부분의 분들 거의 정상적인 모든 분들이 지위고하나 아니면 성공과 재산을 막론하고 돌아가실 때 이렇게 얘기하고 후회하시면서 죽는다. 내가 그 친구한테 좀 더 잘 할 걸, 내가 그 사람한테 좀 더 잘해 줄걸. 그러니까 이게 뭐냐 하면 보람이라는 게 나 아닌 다른 사람과도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공존할 수 있었던 삶의 흔적들이다. 보람을 혼자 느낄 수는 없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장 강한 처벌은 보람조차 못 느끼게 만드는 교도소다. 교도소에서 죄를 짓고 다 같이 수감돼 있지만 거기서도 보람을 찾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조금씩 도와주는 재미있는 행동이 나온다. 그런데 그 보람조차도 못 찾게 만드는 게 바로 독방이다.

 

아무리 언택트 사회라 하더라도 남에게 도움 되는 나의 행동은 있다. 그 도움 되는 행동이 온라인상에서 더 멀리 갈 수 있다.

 

인정 투쟁으로부터 벗어나서 내가 좋아하는 거, 내가 즐길 수 있는 예술적, 미학적 경험뿐 아니라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바람 그것이 행복의 척도가 되어야 한다.

거시적 의미가 기준이고 두 번째 미시적 의미의 척도는 보통 우리가 척도를 바꾼다고 얘기할 때 심리학자들이나 사회과학자들이 이렇게 얘기한다. 몇 점 척도로 바꿀까?

 

첫 번째와 연결이 되는데 사람들이 조금 더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자기의 라이크 그리고 자기의 감탄에 민감해지고 예민해지면 사람들은 점점 더 그 대상에 대해서 안목이 좁지만 구체적으로 전문가가 된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척도의 변화를 알고 있는 건 단순히 우리 자신의 행복보다 더 중요한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이 척도가 변하고 있다는 걸 눈치를 채고 있다.

 

 

라이크에 이렇게 중요하게 된다면 그러면 이게 훨씬 더 기업들은 어떻게 가야 되느냐. 대박의 신화에서 벗어나서 완판의 개념으로 가야 된다. 기술이 이미 3D 프린팅 기법부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까지 굉장히 많은 기술이 나온 게 다종, 그러니까 종류는 다양하게 하고 소량 생산해서 훨씬 더 하나의 상품으로 너 빼고는 다 샀어라고 하는 광고를 하는 시대에서 벗어나서 그런데 당신은 이 부분에서 이렇게 좋아하시는 분이군요.

그 눈금을 우리가 5점에서 7점으로 정교하게 맞춰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다종 소생산으로 들어가서 기업들이 똑똑한 기업일수록 대박의 신화에서 빨리 벗어나고 완판, 소량이지만 이걸 완판하는 그런 아주 지혜로운 개념으로 간다. 그러면서 또 꾸준히 판매가 되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시대가 이제는 바뀌었다.

 

이미 우리 이번에 코로나 이후에 그 개념을 잘 맞춰서 드라이브스루라는 개념도 좀 설계하고 이때 완판 신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완판과 관련된 별명도 가진 이들도 있는데, 그게 바로 척도의 변화가 눈금이 좁아지고 있고 대신 구체적으로 변하고 있구나를 알아차리는 거다. 우리 사회가 계속 그쪽으로 가고 있다.

 

 

다시 정리하면 행복의 기준, 행복의 척도가 바뀐다. 첫 번째는 기준부터 바꿔라. 두 번째는 그 기준이 바뀌다 보면 내가 더 좋아하는 쪽으로 더 전문화될 수 있다. 사회도 기업도 그쪽으로 변화시켜라.

개성을 찾아주고 개성을 오히려 성장시켜주는 이런 교육이 오히려 대량소비에서 끊임없이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주의로부터 우리의 후속 세대를 빼내서 조금 더 같은 자원도 효율적으로 잘 배분할 수 있는 지혜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니까 개성을 살리는 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하고도 지혜로운 메커니즘이다.

 

사실은 소확행이라는 말에 약간의 우려가 있다. 그 우려가 뭐냐 하면 그러니까 오늘 행복하고 내일을 생각하지 말자라고 하는 식의 오늘 자꾸만 행복해서 저축도 하지 말고 이런 거 아니냐라고 걱정하는데, 소확행에는 두 측면이 있다.

 

그 두 측면 중에 작은, 동일한 자원을 가지고도 만족감과 행복감을 극대화할 수 있다라고 하는 건 우리로 하여금 적정한 삶을. 최대로 부유한 삶이 아니라 적정한 삶을 살 수 있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미 기술에서도 실제로 미래를 굉장히 잘 내다보는 그런 과학자들은 최고로 발달한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적정기술이라고 하는 게 가장 인류에게 행복한 기술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적정한 삶과 적정한 기술과 적정한 행복감이 어디인지 그 점근선을 잘 찾아가는 그런 계기를 만났고 코로나19로 그렇게 갈 것이다.

다만 그렇게 가는 속도를 단지 더 빨리 만들어주는 것이 코로나이다. 이미 이전부터 있었던 변화를 좀 더 빠르게 만들어준 것뿐이다.

 

생태적 삶으로 우리가 가야 한다, 인간의 무한 욕망 추구, 그것이 자본주의의 근간인 한 앞으로 이런 위기는 더 자주 올 것이다, 이런 경고도 많이 듣고 했는데, 우리 경제도 우리 기업도 이미 인간의 무한 욕망 추구를 부추기는 것 가지고는 더 이상 지탱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자꾸 자연을 파괴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이런 질병은 더 올 거라는 걸 알게 됐다. 거기서 나온 것들이 적정한 삶, 적정기술이다.

 

왜냐하면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적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문명과 국가와 개인만이 다른 문명과 혹은 문화와 공존할 수 있다. 그런데 공존력을 갖춰야 가장 안전한 개체가 된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욕망을 끝없이 추구하는 국가나 그런 문화는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서 크게 당하고 사실은 오히려 역으로 침략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우리를 잘 지킬 수 있는 최대한의 경쟁력이자 무기가 오히려 공존력이고 적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그 마음이라고 보면 맞는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선진국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서 우리한테 맞는 좋은 나라라는 건 뭘까. 우리가 선진국과 비교하지 않고서도 스스로 좋은 나라, 행복한 나라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와 좋아하는 걸 공유할 수 있는 원거리에 있는 사람과도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그런 기술이 이제 가능하다. 느슨한 관계와도 적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지혜롭고 효율적인 삶이 될 것이다.